드라마가 야인시대가 유행하던 시절, 당시 저를 비롯한 초등학생들의 이야기 주제는 어제 본 야인시대가 팔할을 차지했습니다. 길가면서 야인시대 노래도 부르고, 뽑기로 받을 김두한 반지를 자랑하고, 심지어는 야인시대 놀이랍시고 그냥 싸우지를 않나. 그러나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오갔던 이야기는,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것이었습니다. ‘김두한 VS 시라소니’, ‘김두한 VS 쌍칼’, ‘구마적 VS 신마적’ 등등 별 근거도 없이 누가누가 이긴다 주장했지요. 근거를 대도 ‘쌍칼이 이름이 더 세니까’, ‘구마적이 구이고 신마적이 신이니까’ 등등의 시답지도 않은 것이었죠. 야인시대가 2부로 넘어가면서 정치드라마가 되자, 초등학생에게 인기 없는 스토리의 야인시대 이야기는 팍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초등학생에게 야인시대만큼이나 모두를 모으는 주제도 없었습니다.
어디 야인시대 뿐인가요. 그 당시 유행했던 만화영화도 이 논쟁에 포함되었습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 VS 카드캡터 체리’, ‘무적캡틴 사우르스 VS 사자왕 가오가이거’, ‘코난 VS 김전일’ 등등. 제작 측에서 확실히 공언을 안하면 의미가 없는 이런 논쟁들 말이죠. 이 논쟁은 지금에 와서도 ‘김나박이 보컬 논쟁’, ‘트와이스 VS 레드벨벳’, ‘우츠노미야 시온 VS 모모타니 에리카’ 등의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갔습니다. 진짜 쓸 데 없지만 이를 알면서 즐기는게 VS논쟁이니까요.
이런 논쟁 중에는 유래 깊은 것들도 많습니다. ‘마징가Z VS 로보트 태권V’, '최강의 건담‘, ’테리 보가드 VS 료 사카자키‘, ’슈퍼맨 VS 배트맨‘, ’아이언맨 VS 캡틴 아메리카‘ 등등 말이죠. 제작사들도 이를 잘 아는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집니다. ’최강의 건담‘은 ’건담 Extreme VS 시리즈‘, ’테리 VS 료‘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등의 게임으로 나왔습니다. ’슈퍼맨 VS 배트맨‘, ’아이언맨 VS 캡틴 아메리카‘는 이전에 만화로도 몇 번 나왔지만, 이번에 드디어 영화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각각 ’배트맨 VS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로 말이죠. 각각 ’DC 확장 유니버스‘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페이즈 3‘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게 되는 작품이 됩니다. 크랭크인 소식에 전 세계인의 반응은 뜨거웠고, 작품의 중요도는 더욱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잭 스나이더와 루소 형제는 그 중책을 떠안게 되었고, 영화는 완성되었습니다.
‘배트맨 VS 슈퍼맨’이 ‘시빌 워’에 앞서 개봉되었습니다. 수익은 충분히 벌여들였지만, 내용은 글쎄요. 한 영화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다가 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린 랜턴’과 ‘맨 오브 스틸’만 가지고 세계관을 갑자기 확장시키는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우리 엄마 머서!”, “우리 엄마도 머서!”와 렉스 루터의 “그것도 나다!”와 같은 개연성 없어 보이는 전개에 관객은 악평을 내렸고 남은 것은 원더 우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최악의 히어로 영화에 붙는 ‘닦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정의닦이’라는 칭호가 붙었을까요? 모두가 잭 스나이더를 욕했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사실상 시작인 ‘그린 랜턴 : 반지의 선택’에서 거하게 망하고 가장 중요한 이 영화에서도 망했으니, DC의 미래는 어두워 보입니다. 몇 주 후 ‘시빌 워’의 뚜껑은 열렸고, ‘배트맨 VS 슈퍼맨’에 실망한 관객들은 마블의 차별성에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관객의 평가는, DC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거짓말! 너네 아버지는!
어벤저스의 활동으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UN은 ‘소코비아 협정’안을 내놓습니다. 어벤저스의 활동을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협정이지요. 아이언맨(본명 토니 스타크)은 어벤저스의 활동을 합법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로 이를 저지하는 반면, 캡틴 아메리카(본명 스티브 로저스)는 어벤저스의 자유와 정의의 신념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협정에 반대합니다. 협정에 관해 토론이 열리는 비엔나의 UN 회의장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자,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인 윈터 솔저(본명 제임스 뷰캐넌 반즈, 별명 버키)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캡틴과 같이 도피하지만 결국 경찰에 잡히게 되지요. 버키는 정신 감정을 받다가 정신과 의사의 하이드라 주문에 세뇌되어 베를린에서 폭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그의 세뇌를 풀기 위해 그를 데려가고, 한편 아이언맨은 선더볼트 로스 장관의 명령에 의해 캡틴 아메리카를 설득하러 공항에 갑니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는 설득을 거부하고, 테러와 세뇌의 원인이라 추정되는 제모(개봉판에서는 '지모’라 표기)를 추적하려 하기 때문에 두 진영간에 격투가 일어납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윈터 솔저와의 도주에 결국 성공하고, 아이언맨은 진상을 겨우 파악한 뒤에야 캡틴 아메리카를 쫒아가게 됩니다. 제모는 미리 입수한 윈터 솔저의 충격적 진실을 아이언맨에게 보여주고, 이에 분노한 아이언맨과, 이를 알면서도 묵과한 캡틴과 윈터 솔저, 이 두 편간에 갈등이 다시 촉발됩니다. 모두가 상처를 입은채 격투는 끝나고, 윈터 솔저는 봉인되고, 내분으로 인해 어벤저스는 와해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위는 본 영화의 스토리를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전에 쓴 ‘토탈 리콜’ 때도 그렇지만, 위 요약은 순전히 스토리라인만 간략하게 보여줄 뿐이지, 본 영화의 핵심을 전혀 보여주지 못합니다. 파고들면 들스록 스토리가 상당히 복잡하거든요. 스토리 그 자체가 지닌 개연성과 연쇄성이 강력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배트맨 VS 슈퍼맨’과 같은 뜬금없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여느 MCU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전작을 토대로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쌓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스토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복수의 연쇄’라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전작에서부터 이어져오던 복수와 복수의 꼬리물기가 계속되고, 이제까지 응축되어온 복수는 본 영화에서 강력하게 폭발합니다. 제모의 아지트에서 윈터 솔저와 아이언맨이 싸우는 장면부터 역으로 올라가봅시다. 아이언맨은 제모를 통해 윈터 솔저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알게된 뒤, 복수의 목적으로 윈터 솔저에 대항합니다. 간접적으로는 자신의 친구인 로디(워 머신)의 중상에 대한 복수도 있지요. 그런 윈터 솔저를 위해 왜 캡틴 아메리카는 싸우는 걸까요? 자신의 유일한 친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친구를 세뇌시킨 하이드라에 복수하려는 의도이지요. 이 상황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전작들, ‘퍼스트 어벤저’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부터 이어져오는 것입니다.
그 앞의 공항 결투신을 살펴봅시다. 어벤저스의 분열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장면입니다. 블랙 팬서(본명 트찰라)는 윈터 솔저에 대항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게 된 원인인 비엔나 테러가 윈터 솔저에 의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복수하려는 의도이지요. 스칼렛 위치(본명 완다 막시모프) 자신을 가두었던 비전에 대항합니다. 이렇게 어벤저스 내부 분열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소코비아 협정’입니다. 그들에게 ‘소코비아 협정’을 유도하는 인물이 둘 있습니다. 한 명은 선더볼트 로스이고, 다른 한명은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인 제모입니다. 선더볼트 로스는 국무장관의 권위를 이용하여 ‘소코비아 협정’의 체결을 강요합니다. 반대하는 자들은 미리 준비해놓은 수중 감옥에 즉시 감금합니다. 애초에 어벤저스의 활동을 제한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MCU 페이즈 1의 ‘인크레더블 헐크’까지 올라갑니다. 장군 시절 헐크에게 입은 굴욕을 국무장관으로써 갚겠다는 계획인겁니다. 협정을 통해, 그에 반대한 캡틴 아메리카 등의 영웅을 범죄자로 만들었으니 그의 복수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볼 수 있습니다. 제모도 자신의 복수를 위해 어벤저스의 내분을 유도합니다. 버키로 위장하여 UN 회의장에 테러를 일으킨 것, 버키를 세뇌하여 베를린에 피해를 입힌 것 모두 어벤저스의 이미지를 악화시켜 여론을 협정 체결로 유도하려는 것이지요. 아이언맨에게 윈터 솔저가 스타크 부부를 살해하는 영상을 보여준 것은, 아이언맨을 동요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소코비아 사태에서 어벤저스에 의해 가족을 잃은 제모가 스스로 어벤저스를 무너뜨림으로써 복수하려는 것입니다. 내분은 성공하였고, 그가 비록 경찰에 잡히긴 했지만, 복수는 충분히 성공하였습니다. 이렇게 영화의 거의 모든 인과 관계가, ‘복수’ 하나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아이언맨’, ‘토르 : 천둥의 신’, ‘어벤저스’ 등에서 볼 수 있듯, MCU가 자체가 복수의 소재를 많이 차용하고 있습니다. MCU의 가장 큰 줄기인 ‘어벤저스’의 뜻이 ‘복수자들’이라는 것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중에서도 ‘시빌 워’는, MCU에서의 ‘복수’라는 키워드를 가장 극대화시키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수의 원인이 본 영화뿐만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페이즈 2, 심지어는 ‘인크레더블 헐크’, ‘퍼스트 어벤저’의 페이즈 1에서부터까지나 이어지니, MCU가 얼마나 그들의 세계관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는지 엿 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피해자들
본 작품의 스토리를 ‘복수’로 요약할 수 있다면, 본 작품의 캐릭터는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를 ‘장처입은 사람들’이라고 칭하려고 합니다. 본작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상처를 입은 채로 등장하거나 여기서 상처를 입게 되니까요.
스칼렛 위치부터 살펴봅시다. MCU에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인물입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상처를 입은 채로 등장합니다. 스타크의 무기로 인해서 고아가 되고, 오빠인 퀵실버만 남아 둘은 복수를 위해 울트론의 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 어벤저스로 들어가 울트론에게 대항할 때, 퀵실버는 그에게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부모도 잃고, 오빠도 잃고, 같이 있을 가족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시빌 워’ 본편에서도 그녀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자신이 라고스에서 한 행위가 참사를 일으키고, 이후 어벤저스의 분열의 원인인 ‘소코비아 협정’이 탄력을 받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녀가 ‘소코비아 협정’에 반대하는 이유도 어느정도는 이러한 죄책감에 기반을 둡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지켜주던 비전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지만요.
비전도 두 번째 출연작에서부터 크게 상처를 입습니다. 그는 스칼렉 위치를 보호할 의무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비전을 거부하고 탈출을 감행하여, 그는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물적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공항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비전이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저를 쫓아 공격을 하다가 실수로 워머신을 맞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입니다. 추적의 임무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토니의 가장 큰 친구인 로드에게까지 치명상을 입혔으니, 아무리 완벽한 비전이라도 정신에 큰 충격을 입었을 것입니다.
블랙 위도우(본명 나타샤 로마노프)는 현실과 이상을 타협하려다 상처를 입은 케이스입니다, 어벤저스에 타 영웅보다도 오래 존재했던 그녀가 어벤저스의 와해를 막으려 힘써왔다는 것은, MCU를 여태까지 봐왔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각 영화마다 출연하여 메인 히어로를 서포트하고, 어벤저스에서는 헐크를 유화시키는 등, 어벤저스의 활동을 위해 뒤에서 받쳐주는 것이 돋보이는 그녀입니다. 본 작품에서도 그녀는 어벤저스의 보호를 위해 아이언맨 진영에 들어가 싸우면서도, 스티브와 버키를 보호하여 싸움이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막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모의 계획에 따라 그녀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두 진영의 간격이 커져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어벤저스의 내분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스스로 통감하게 됩니다.
블랙 팬서는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경우입니다. 그는 극중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제모의 테로로 인하여 아버지를 잃게 됩니다. 제모의 조작으로 테러의 범인이 윈터 솔저라 의심한 그는, 처음에는 복수심에 마구 타올라 윈터 솔저만 보면 끝까지 쫒아가서 격하게 싸움을 벌입니다. 그가 아이언맨 진영에 들어간 것도, 아버지가 지지한 협정을 지지한 이유도 있겠지만, 순전히 윈터 솔저를 쓰러뜨리겠다는 의도가 더 큽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그는 테러, 윈터 솔저, 협정 등에 관한 진상을 알게 되고, 어벤저스와 행동하면서 정신적 성숙을 거칩니다. 제모가 테러의 범인임을 알고도, 제모가 자신과 똑같이 가족을 잃은 자임을 알고는 경찰에 넘길지언정, 죽이려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감정이 이성보다 앞었던 그였지만, 어벤저스 활동에 동참하면서 자신이 처해있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지요. 상처 입은 채로 끝나는 여타 히어로와는 달리, 블랙 팬서는 상처의 치유와 정신적 성장으로 극을 맺습니다.
하 시X 하이드라
이제 본 영화의 핵심 인물 3인방을 살펴봅시다. 먼저 캡틴 아메리카입니다. MCU에서 캡틴만큼 오랫동안 굴곡진 삶을 산 자도 드뭅니다. 선량하지만 평범했던 군이니 실험으로 영웅이 되지만, 의지할 사람은 모두 죽어나갔고, 냉동상태에서 깨어난 뒤에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버키는 그토록 증오하던 하이드라의 하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극중에서 자신의 첫 여자친구였던 페기가 죽기까지 하니, 그동안 캡틴은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았습니다. 비록 어벤저스의 동료가 있기는 하나, 그 자신에게는 업무 파트너적 측면이 더 강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한 의지 대상은, 세뇌당한 버키입니다. 하이드라에 잠식된 그를, 캡틴은 끝까지 하이드라에서 꺼내려고 합니다. 그를 보호하려는 데서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상황을 맛보게 됩니다.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정의를 깨뜨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집단에 속한 버키를 옹호하다니! 캡틴의 상징인 방패가 윈터 솔저를 공격하로 온 블랙 팬서에 의해 스크래치가 난 것은, 그의 신념이 이 영화에서 그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에 맞서는 것도, 처음에는 협정이 자유를 억압하고 정의 구현에 방해가 된다는, 신념에 어긋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협정에 관해서는 의견일치가 어느정도 외었음에 불구, 싸움은 계속됩니다. 사회적 정의에 어긋나는 인물을 오히려 감싸는 캡틴 아메리카 그 자신 때문입니다. 점점 신념보다도 자신을 더 중시하게 된 겁니다. 방패를 버린 것도, 자신의 신념을 내놓았다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자신이 영웅으로써 존재하게 한 무기이고, 같이 정의를 수호하고자 한 하워드 스타크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자신이 의지한 사람을 더 이상은 잃지 않겠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캡틴이었습니다. 버키의 제안으로 인해, 윈터 솔저를 냉동시키고, 토니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다시 신념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표출하나, 이미 상당히 어긋난 뒤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하이드라와 제모에 의해, 옛 친구도 잃고 소중한 동료도 잃고 자신이 지켜오던 신념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신념의 이상과 인간적인 현실 사이에 방황하는 과정을 거치다, 후자를 채택하고 그 외의 너무 많은 것을 떠나보냈습니다. 상처의 회복을 위해 또다른 상처를 받게된 것입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오랫동안 쌓여왔던 상처를 회복하려는 경우라면, 반대로 아이언맨은 본 영화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자신이 합법적 수단으로라도 유지하려 했던 어벤저스는 분열의 위기에 처하고, 자신의 부모의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아이언맨은 어벤저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심각함을 이미 알고 있고, 소코비아 협정을 피할 수 없는 적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비록 활동상에 제약은 받더라도 어벤저스를 합법화하는 차악이, 활동상의 자유는 보자오디어도 어벤저스가 범죄자 집단이 되고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최악보다 낫다는, 현실적 측면에서 협정을 지지합니다. 아무리 캡틴의 진영이 자유와 정의의 신념을 유지하고, 자신도 속으로는 이를 지지한다지만, 국제사외의 압박이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거든요. 캡틴을 비롯한 다른 어벤저스가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선더볼트 로스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고 그들을 추적하고 그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협정을 거부하고 감옥에 갇힙니다. 어벤저스의 불법화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그는 일차적으로 떠안게 됩니다. 반대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단 점도 있고요.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상처는 동료로부터의 배신감에서 옵니다. 토니는 자신의 부모가 단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줄 알았지만, 제모에 의해 충격적 사실이 알려집니다. 세뇌당한 윈터 솔저가 슈퍼 솔저 혈청을 빼오기 위해 스타크 부부를 습격하여 지속적으로 육체적 폭행을 가해 즉사시켰단 것입니다. 아이언맨이나 관객이나 잔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영상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바로 옆의 동료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장본인임을 알아버렸으니까요. 그것이 세뇌에 의한 것임을 알더라도, 그가 부모를 죽인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부처가 아닌 이상에야 버키에게 분노하지 않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아이언맨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브에 대한 배신감은 여기에 기름을 붓습니다. 버키의 범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라는 이유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모덕에 지금의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는데, 정작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를 옹호하다니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부모가 만든 방패에 오히려 공격을 당하고 있다니, 그가 입은 배신감과 상처는 엄천나 것입니다. “그거 우리 아버지 방패야! 너는 가질 자격 없어”는 이런 배신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입니다. 얼핏 보면 찌질해 보이지만, 그는 캡틴 아메리카가 가장 크게 자책감을 느낄 수 있게 분노의 일갈을 날린 것입니다. 이를 캡틴도 느꼈는지, 자괴감으로 인하여 결국 방패를 버리게 됩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로디의 치명상, 페퍼와의 관계 악화, 어벤저스의 분열, 사회적 비난 등 그가 여기서 입은 상처는 산더미만합니다. 영화 초반의 트라우마 치료에 관한 강연은, 그 스스로가 트라우마 치료에 관심이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부모님에 대한 진실 때문에 트라우마가 더 강해졌다는 게 아이러니이지요. 영화의 마지막에, 아이언맨은 정신을 추스르고 캡틴의 사과 서신을 받습니다. 윈터 솔저에게 트라우마 치료를 집행할 거라는 암시도 나옵니다. 그가 입은 상처에 비해 대차가 가볍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이 입은 상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요. 블랙 팬서와 더불어 아이언맨이 극중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윈터 솔저는 본 영화의 가장 큰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이드라에 세뇌되었다는 취약점 하나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자신도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의 의지도 아닌데 그로 인해 비난을 받습니다. 스티브라는 오랜 친구를 찾았지만 자신은 그에 대한 기억을 세뇌로 인해 잃어버립니다. 하이드라의 세뇌로 인해 그는 스타크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 아들에게 비난받습니다. 제모가 한 조작으로 인해 그는 테러범으로 몰려 국제사회와 몇몇 히어로들에게 비난받습니다. 그를 두고 어벤저스가 분열하기까지 합니다. 모두 하이드라 때문입니다. 그의 친구 캡틴 아메리카가 그를 끝까지 감싸지만, 그러기엔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비난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영광스러운 전사자로 남는 게 나았을 지도요. 아이언맨에 의해 그의 팔이 날아가는 것은 하이드라에 대한 비난으로 보입니다. 자신도 자신이 모르는 자신에 의해 더 이상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 스스로 냉동 상태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자신에게는 일종의 반성 수단이겠지만, 어떻게보면 회피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 스스로 비난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이드라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이상, 은둔 이상으로 피해를 방지하는 수단도 딱히 없습니다. 자신의 가장 큰 피해자인 토니가 트라우미 치료를 한다면 그 하이드라의 압력에서 풀려나 어느 정도 비난에는 자유로워지겠습니다. 그 전까지 자신의 상처를 계속 지니고 가야한다는 것이 슬픈 일이긴 하지만요.
어벤저스만 상처를 입은 것일까요? 영화의 초반에서부터 소코비아 사태의 희생자는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토니의 강연 후의 유족, 로스의 브리핑, TV뉴스 등에서 소코피아 사태는 지속적으로 언급됩니다. 라고스 참사와 더불어 소코비아 협정을 논의하는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이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애석하게도 본 영화의 메인 빌런인 제모입니다. 소코비아의 군인이었던 그는, 어벤저스가 소코비아를 띄웠을 때, 그 잔해로 인해 가족을 잃게 됩니다.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를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그의 애정이 정말로 큰 인물입니다. 그가 자신의 슬픔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일차로 다른 피해자들처럼 소코비아 협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더 나이가, 아예 어벤저스를 파괴하기로 합니다. 그는 군인 출신으로서의 두뇌를 살려, 어벤저스에 대해 철저히 분석합니다. 그는 외부의 힘으로는 어벤저스를 파괴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도 스스로 그럴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슈퍼 솔저를 처치해놓은 이유도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어벤저스를 안에서부터 갈라놓기로 마음먹습니다. 비엔나 테러를 일으킨 범인을 윈터 솔저로 덮어씌우고, 분열이 일어난 후에야 범인이 자신임을 드러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하이드라의 간부를 습격하여 윈터 솔저의 세뇌법과 스타크 부부의 영상을 찾아 윈터 솔저를 갈등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하이드라에 세뇌된, 캡틴 아메리카의 유일한 친구이자, 스타크 부부를 죽인 자라는 점을 제모는 철저히 이용합니다. 그의 계획에 어벤저스는 너무나 잘 놀아났고, 어벤저스의 불법집단화와 분열을 성공시켜, 소코비아의 빚을 갚는 데에 성공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도 어벤저스를 꺾는 데에 실패했는데, 비상한 머리 빼고 아무것도 없는 자가 어벤저스를 꺾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열이 장기화된 형태가 될 거라 생각해본다면, 제모의 “너희들은 실패했다”라며 웃음지은 것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됩니다. 제모의 입장에서 보면 ‘시빌 워’는 완벽한 복수극이 되었습니다. 흡사 별 신체능력은 없지만 그 두뇌로써 배트맨에 대항한 조커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조커는 복수보다는 그저 순수하게 악을 즐기는자였고, 제모는 그가 악을 저질러야할 크나큰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요.
하지만 소코비아의 희생자를 위해 복수하기 위해, 또다른 대량의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수단 상의 문제에서 제모에게 마이너스 점을 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어벤저스를 똑같이 닮게 되었잖아요. 게다가 어벤저스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를 일으켰지만, 제모는 대놓고 사고를 의도했습니다. 결국 흉악성만큼은 다른 빌런 못지않습니다. 가족에게는 따뜻한 남자였지만, 나머지에게는 냉랭했습니다. 저는 제모를, 상처가 너무 깊어 악인으로 흑화된 사례라고 여깁니다. 어쨌든, 여태까지 보아왔던 MCU의 메인 빌런 중 가장 매력적인 빌런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활주로는 국가 주요 시설입니다
영화의 서사적 분석은 이쯤에서 해두고, 이번에는 연출적 분석을 해봅시다. 본 영화의 핵심은 단연 액션신입니다. 본 영화의 주요 액션신이라고 한다면 ‘라고스 결투’, ‘비엔나 추적’, ‘베를린 추격’, ‘공항 결투’, 마지막으로 ‘제모의 아지트’, 이 다섯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액션신이 가면 갈수록 규모가 작아진다는 점, 그리고 인물에의 집중도가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초반의 ‘라고스 결투’부터 봅시다. 팔콘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 비해 강력해진 날개, 그리고 드론까지 장착합니다. 블랙 위도우는 여전히 화려한 몸싸움을, 캡틴은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스칼렛 위치도 전보다 어벤저스에 잘 녹아들었습니다. 반란군도 액션의 합이 잘 맞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액션신이 이후의 스토리에 큰 연계성을 지니도록 피해상황을 잘 노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파괴당하는 구조물과 피해입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킵니다. 마지막 스칼렛 위치의 실수에서 이는 정점을 찍습니다. 넓은 지역을 바탕으로, 많은 인물들이 액션을 펼치고, 그에 따라 피해상황도 극대화됩니다. 이를 통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지 않은 관객도 ‘소코비아 협정’에 쉽게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인물에 관해서는 싸움꾼의 기질에만 집중되지, 고뇌까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갈등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니까요.
다음은 ‘비엔나 추적’입니다. ‘시빌 워’의 새로운 요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신입니다. 제모의 첫 테러, 소코비아 협정의 본격화, 블랙 팬서의 등장, 윈터 솔저의 재출현 등의 주요 요소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건물의 붕괴, 특수 경찰의 침투 등등 스케일은 거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웅장하며, 윈터 솔저의 도피, 블랙 팬서의 등장신은 그냥 멋집니다. 액션의 규모는 전과 비슷하지만, 인물의 갈등이 액션신 안에서 슬슬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베를린 추격’입니다. 제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소코비아 협정에 관한 어벤저스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됩니다. 영화에서 왜 초반에 세뇌신을 보여줬는지 이해하게 하는 장면이며, 제모의 지략가적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액션신의 규모는 앞의 두 신보다 작아졌으며, 대신 추격전의 요소를 더해 스피드함을 강화시켰습니다. 여전히 하이드라에서 벗어나지 못한 버키를 두고 두둔파와 반대파의 본격적인 갈등이 촉발됩니다.
‘공항 결투’는 작은 공간 안에서 최대의 결투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캡틴 아메리카 진영과 아이언맨 진영의 싸움이 드디어 펼쳐지는 하이라이트입니다. 최대한 히어로 간의 결투에 집중시키기 위해, 이전과 달리 난잡하지 않은 공간인 공항을 택하였고, 이는 동시에 뒤의 비행기 탑승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아이맥스의 활용으로 웅장함도 강화시켰고요. 각 인물의 개성이 잘 드러나게한 액션구성도 뛰어납니다. 캡틴은 그 강철같은 몸과 방패를, 팔콘은 라고스의 신무기를, 호크아이는 화살을, 스칼렛 위치는 교란을, 윈터 솔저는 그 팔뚝을 자랑하며, 특히 앤트맨은 신체를 줄임으로써 상대를 습격하고, 신체를 늘임으로써 파워까지 증명했습니다. 아이언맨과 워머신은 수트를, 비전은 신비한 힘을, 블랙 팬서는 무하마드 할리와 같은 몸짓을, 블랙 위도우는 화려함을 자랑하며, 특히 스파이더맨은 처음 싸우는데도 그 수다스러움을 전혀 잃지 않습니다. 히어로 결투신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야말로 인물의, 인물에 의한, 인물을 위한 액션신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모의 아지트’입니다. 배경은 좁고 어두은 제모의 아지트이며, 싸우는 인물은 스티브, 토니, 그리고 버키 셋뿐입니다. 규모는 이제까지의 액션신 중 가장 작습니다. 하지만 극의 끝이니만큼 갈등은 최고조입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제모에 의해 제공되었습니다. 이에 의해 이 싸움은 히어로의 결투가 아니라, 그저 사람의 싸움입니다. 즉, 스티브와 토니, 그리고 버키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스티브와 버키가 일방적으로 토니를 공격하는 장면은, 토니의 비참함과 배신감을 극대화시킵니다. 아버지에게 도움받은 자와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마지막 토니의 대사는 그야말로 클라이막스. 좁고 어두운 곳에 홀로 남은 토니는 그의 비참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여주면 끼워맞춘 것일수도 있지만, 앞의 액션신의 규모를 크게 하여 비주얼적 화려함에 집중한다면, 뒤의 액션신은 규모를 줄이고 인물의 갈등에 집중하게 합니다. ‘시빌 워’와 같은 복수극에는 이런 액션신의 배치가 적합해보입니다.
거기 한 명이 안보이는데요
다시 인물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본 영화의 새로운 히어로로 ‘블랙 팬서’,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등장합니다. ‘블랙 팬서’는 스토리상 필수로 등장해야합니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은 왜 나온 걸까요? 토니가 새로운 히어로가 필요해서 데리고 왔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별 경험도 없는 피터 파커가 베테랑들의 싸움에 낄 수 있나요? ‘스파이더맨’의 단독 작품은 다음에야 나옵니다. 비중도 공항신과 쿠키영상 빼고는 없어요.
제 생각에, 먼저 MCU에 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나온다는 자랑인 것 같습니다. 그 골치 아픈 소니와의 판권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드디어 마블의 간판 스파이더맨이 나왔음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시빌 워’에서 등장시켜야죠. 다음은 ‘신 스틸러’ 역할입니다.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 행동을 취할 때마다 웃고 환호합니다. 무거운 극 전개에 어느정도 긴장감을 풀어주고, MCU의 스파이더맨에 기대하게하는 결과도 낳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도, 그의 역할이 ‘관객을 대변’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저씨’의 ‘형사’와 같이, 관객을 대변하는 역할은 관객의 공감도를 높여줍니다. 떠벌이 스파이더맨, 아니 꼬마 피터 파커는 어른들의 싸움을 말그대로 신기해합니다. 자신이 거미인간이 된 것도 신기한데, 사람의 사이즈가 변하지를 않나, 기계가 날아다니지를 않나, 사람이 무쇠팔을 지니지를 않나, 염력을 쓰지를 않나. 히어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정을 그대로 표출하여 관객에게는 웃음을, 그리고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제 3의 벽을 깨서 연출적 재미를 주는 역할을, 여기서는 피터 파커가 맡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것 만으로도, 피터가 충분히 역할을 했다 생각합니다.
이런 엔딩은 아니고
이 영화에서 또하나 주목할 것은, 히어로 영화임에 불구,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MCU를 생각해보세요. 아이언맨은 승리했고, 캡틴 아메리카는 승리했고, 토르는 승리했습니다. 그 이전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생각해보세요. 배트맨은 승리했고, 슈퍼맨은 승리했고, 울버린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시빌 워’는요? 제모에게 완벽하게 패배했습니다. 제모는 자신의 입으로 어벤저스가 자신의 계략에 그대로 넘어갔음을 시인했습니다. 캡틴은 방패를 버렸고, 아이언맨은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윈터 솔저는 냉동되었습니다. 극 후반에 화해의 장면이 나오고, 탈옥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글쎄요. 앞으로의 MCU는 어벤저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지속되고, 내부 분열은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후의 MCU를 위해 타 히어로 영화와 달리 극을 배드 엔딩으로 끝낸 점은 상당이 특이한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MCU에서 어떻게 어벤저스의 갈등이 해결되고 ‘인피니티 워’까지 갈 수 있을지, 관객들은 궁금하게 됩니다. 히어로의 승리라는, 히어로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깨버리고, 다음을 위해 배드 엔딩으로 극을 끝냈다는 것은, 어쩌면 마블 스튜디오의 자신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액시즈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싸워서 누가 이겼냐고요? 캡틴이 아이언맨을 쓰러뜨렸으니 캡틴이 이겼다고요? 캡틴이 방패를 버렸으니 아이언맨이 이겼다고요? 솔직히 어느 관객이든지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잖아요. 단지 아이언맨이 불쌍하고 캡틴이 나쁘다는 것이지. 결국 VS논쟁의 끝은 공허함입니다. 답은 나오질 않고, 정작 당사자들은 상처만 받았어요. 어쩌면 마블 스튜디오는, 그런 쓸데없는 VS논쟁하면 이 사단이 나니까, 그만두라는 농담을 던진걸 수도 있고요. 물론 의도와는 상관없이, VS논쟁은 계속되겠지요.
길고 긴 시빌 워 리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저조차도 한번 본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글을 길게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토탈 리콜’에 이어서 인제야 두 번째 쓰는 리뷰인데, 힘이 부치네요. 글 쓰다가도, 밥 먹다가도, 일 하다가도, TV 보다가도 기억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서 적어 내려가다 보니 이렇게 글이 길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서 영화에 관해 여러 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분명 기쁜 일입니다. 다음에는 더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