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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노도고시 잡담.

KANNA K 2016. 8. 27. 16:30

사카이 씨, 저는 당신을 좋아하지만, 죄송해요. 노도고시는 정말로 싫어요.


  예전에 쓴 글 중에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와 '노도고시'를 연관지어서 쓴 글이 있습니다. (링크) 거기서 노도고시에 대한 경험담을 쓴 적이 있죠. 이에 관해서는 하단에서 다시 이야기를 할테지만, 일단 노도고시에 관해 까고 가야하지 않겠어요?


  '노도고시'에 관해서 트위터에다 의견을 물어보면 크게 두가지로 갈립니다. '적은 돈으로 맥주의 시원함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라는 입장과 '맥주의 기본도 안 지킨 싸구려 음료수'라는 것이지요. 전자도 충분히 맞는 말이고 후자도 충분히 맞는 말입니다. 500ml캔 기준으로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가격이 259엔인데 반해 노도고시 500ml캔의 가격은 178엔이에요. 거기다가 슈퍼마켓 할인행사를 하면 165엔이라는 가격이 되죠. 맛도 드럽게 없는 하이트 500ml 캔의 가격이 2600원임을 감안하면 이건 정말로 싼거죠. 500ml의 맥주를 천몇백원만 주면 살 수 있는데 노도고시의 가격은 당연히 소비자의 매력을 끕니다. 애초에 노도고시의 컨셉이 일하고 퇴근후의 피로를 풀어주는 맥주임을 감안하면 더욱이요. 일본에서는 평소에는 노도고시만 먹다가 월급날이 되면 에비스를 마신다는 말도 많지요. 그럼에도 한국에서 지금 유시진 대위가 강조하는 그놈의 망할 목넘김보다도 노도고시의 목넘김이 더 좋습니다. 이건 확실히 인정해야해요. '노도고시'의 뜻이 '목이 시원하다'는 뜻이에요. 퇴근을 마치고 노도고시의 그 시원함에는 그 가격으로 당해낼 자가 없어요. 이렇게 보면 전자에 이끌려 노도고시에 이끌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말했습니다. 저는 노도고시를 엄청나게 싫어합니다. 아직도 작년 1월에 신주쿠의 호텔에서 마신 노도고시의 맛은 잊을 수가 없어요. 나쁜 의미로, 충격적이었어요. 단순히 추운날에 마셔서 맛없는거겠지하고 작년 6월에 오사카에 갔을 때 다시 한번 도전해봤죠. 교토를 다녀오고 힘들었고, 날씨도 더웠는지라 맥주를 먹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죠. 다시 근처 로손에 가서 노도고시를 샀지만, 여전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맹맹한 맛, 그 냄새, 여전히 그대로였어요. 또다시 화가 났지요. 이후로는 진짜로 노도고시를 안 사기로 결심했어요. 그정도예요. 일본에 같이 여행을 간 지인에게 놀려먹는 의미로 노도고시를 선물하기도 했고, 제가 그렇게 노도고시를 욕하는 것을 궁금해하는 지인에게 노도고시를 구매대행하기도 했지요. 그 중 하나는 돼지고기 삶는 데에 사용되었고요, 하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분명 사줬는데 언제 사줬냐고 하고 있어요. 또다른 일본 간 친구에게 노도고시 먹으라고 권했건만 거부감 든다고 마시지를 않했어요. 제 노도고시 악담이 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속적으로 노도고시 임상실험을 하고 있으니 노도고시 먹어보고 평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보면 사디스트적 기질이 있는게 확실해요.


에비스 중에서도 최고로 불린다는 코하쿠 에비스


  근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노도고시를 마셔본 후기들만이 존재하지, 노도고시가 어떤 맥주인가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습니다. 찾으려면 일본 위키를 찾아야합니다. 국내의 그 유명한 서브컬쳐(라고 보기에는 이미 너무 비대해진) 위키인 나무위키에도 노도고시에 대한 서술은 없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된거, 노도고시에 관해 설명을 직접적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일본의 맥주시장이 괴상하게 변하게 만든 신호탄


  일본의 맥주시장에서는, 맥주 안에서도 단계를 나눠놓습니다. 보통 어떤 재료를 사용했느냐, 어떤 공법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고 나누는 식이지요. 4대 메이커(기린,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기준으로 상위라인이라면 이치방시보리(기린, 사실 가격대는 아사히 슈퍼드라이와 비슷함), 아사히 드라이 프리미엄(아사히), 에비스(삿포로), 더 프리미엄 몰츠(산토리), 일반라인이라면 기린 라거(기린), 아사히 슈퍼드라이(아사히), 삿포로 쿠로라벨(삿포로), 더 몰츠(산토리)가 있습니다. 상위라인이 일반적인 개념에 적합한 맥주, 그러니까 정상적인 맥주 제조법으로 다른 부가물을 섞지 않고 맥아만 풍부하게 넣어 깊은 풍미가 나는 맥주이지요. 일본에서 파는 사실상 '제대로된 맥주'의 라인에 유일하게 포함된다고 볼 수 있고요, 일본에 가서도 실험이 아닌 이상 이것들을 우선으로 찾고 있습니다. 도쿄에 가면 꼭 에비스 기념관에 들러서 에비스를 맛보고 올 정도니까요. 일반라인은 맥주의 개념에는 좀 맞지는 않고 그냥 흔히 맥주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신맛과 가벼운 맛으로 쾌감'을 준다는 평과 '이딴건 맥주도 아니다'라는 평을 동시에 들은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필두로 한 라인이죠. 일단 일본 주세법상 맥주의 기준인 맥아 67%을 넘음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킨 라인이지만. 어쨌든 이것도 한국 맥주보다는 맛있어서 한국에서는 자주 찾는 라인입니다.


기린의 밥줄 1, 탄레이. 2는 당연히 노도고시.


  그 하위라인에는 발포주가 있습니다. 맥아 67% 이하를 사용한 맥주라고 부르기도 뭐한 곡주를 말하는 것이지요. 대부분이 25%의 맥아를 쓴답니다. 물론 이것저것 섞고 공법이 발달하면서 맛이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그래봤자 발포주지요. 한국 맥주가 일본에서는 발포주로 수입된다고 하니, 한국 맥주가 얼마나 처참한지는 잘 알수가 있겠지요. 탄레이(기린), 스타일프리(아사히), 극ZERO(삿포로)가 대표적입니다. 상당수의 지역맥주가 여기에 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맥아가 들어간다는 맥주 구실이라도 할 수 있는 물건들이고 가격도 맥주보다는 싸니 참 애매한 라인입니다. 발포주 맛보시려면 굳이 일본 가실 필요는 없고 그냥 하이트나 카스 드시면 열화판 정도는 느낄 수 있을겁니다.


산토리가 프리미엄 몰츠만 만든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최하위라인에는 제3맥주, 또는 신장르라고 불리는 맥주가 있습니다. 맥아를 발포주보다도 적게 넣거나 아예 안 넣고 대신 대두 등으로 떼워버리는 곡주들을 말합니다. 이것저것 섞어서 만드는 술이기 때문에 당연히 맥주의 맛은 겉돌기만 하고, 그냥 곡물 탄 알콜음료수밖에 안되는 것이지요. 이런건 한국에서도 안 팔거예요. 일본 맥주회사가 얼마나 맥주라고 불리는 개념을 해괴하게 만드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에요. 그래서 일본의 맥주에 관해서는 상위라인 빼고는 논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정작 그 가격 하나 때문에 맥주회사를 책임지는 라인업이라니 그저 슬픕니다. 노도고시(기린), 클리어아사히(아사히), 맥과 호프(삿포로), 킨무기(산토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맞아요. 노도고시가 그 제3맥주에 포함되는 라인업이에요! 맥주보다는 맛이 떨어지니 가격이랑 목넘김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킨무기를 지인의 추천으로 마셔봤지만 향이 노도고시보다 조금더 진할 뿐이지, 노도고시와 똑같이 겉에서 맴도는 맛이었어요. 저번 한자와 나오키의 표현을 다시한번 인용하자면,

  "캔을 딸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칙'하고 짧게 끊기는 소리는, 김 새는 콜라의 뚜껑을 다시 여는 양 가벼웠다. 물론 소리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거기에서 온 불안한 예감은 확실히 들어맞았다. 냄새도 그렇다. 캔을 따라가자마자 스물스물 나온 냄새는 맥주보다도 소주의 것과 더 비슷했다. 곡물의 냄새는 그저 겉돌기만 하였다. 남은 과정은 마시는 과정. 촉감부터 말하자면, 합격점을 줄 만하다. 맥주 이름 그대로 목(노도)을 시원(고시)하게 하는, 목넘김이 좋은 맥주였다. 한 모금 들이킬 때, 탄산의 그 시원함이 식도를 쭉 타고 흘러 내려갔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목넘김이 강조되는 한국 맥주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듯, 노도고시도 목넘김 빼면은 시체였다. 이것은 일본에서 만드는 한국 맥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맛이 없었다. 입에 한 모금을 넣자마자 든 생각은 '밍밍하다'는 것이었다. 냄새에서도 그랬듯이, 곡물의 맛은 그저 표면에서 겉돌 뿐이었고, 실은 에탄올이 들어간 탄산수 같았다. 에비스나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같이, 소위 말하는 깊은 맛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는 정반대였다. 이게 뭐야, 하고 얼굴을 찡그린 뒤, 얼마 안 하는 맥주 값조차 아까워서 입에 털어넣고 깡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감자칩만 입에 넣어대기 시작했다. 이딴 맥주를 1위로 만드는 일본인들의 입맛에 이해가 안 갔다. 가격과 목넘김 빼고 남아 있는게 없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노도고시는 여러분이 일본 직장인이 아닌 이상, 가난한 고학생이 아닌 이상, 여행에 돈이 다 떨어졌는데 맥주가 먹고싶지 않은 이상 전혀 살 필요가 없는 맥주예요.

  그 밖에 일본에 다양한 맥주가 많은데, 이 맥주가 맥주인지, 발포주인지, 제3맥주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럴때는 캔을 주목하시면 됩니다. 맥주라고 써져있으면 맥주고, 발포주라고 써져있으면 발포주고, 발포성 리큐르라고 적혀있으면 제3맥주예요.


  결론은, 노도고시 먹지 마세요. 일본여행가는 사람에게 안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사디스트라면, 노도고시를 추천합니다. 제가 그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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